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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 내력 아니야?

크리스천헤럴드 2011. 3. 28. 15:48

친정 내력 아니야?

가정 칼럼 황경연 시인 동화작가

저녁 식탁에 앉아 후식을 먹으면서 나의 허리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녁밥을 짓는데 허리가 너무 아파서 힘들었어요.” “혹시 친정 내력 아니야?” 내 말 끝에 대뜸 친정을 들먹이는 남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혈압이 오르는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허리가 약한 것이 친정 특유의 체질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허리 아픈 것이 무슨 희귀병도 아니고 유전질환도 아닌데 그렇게 쉽게 말하는 남편에게 “아니, 그럼 당신네 가족은 아픈 사람 없어요? 사람이 살다보면 아프기도 하고 그렇죠.” 퉁명스레 대꾸하고 말았습니다.

남편의 말에 악의가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또 농담 삼아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자에게 있어서 친정은 아킬레스건과 같아서 작은 것에도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남편의 그 말 한 마디에 내 마음은 찢기는 듯 아팠습니다.

설거지 할 마음도 없어진 나는 그대로 안방으로 들어가 누워버렸습니다. 그리고 작은 배려도 없이 불쑥 이야기를 하는 남편이 야속하고 섭섭하기만 했습니다. 남편은 거실에서, 나는 안방에서 각자 누워 천정만 멀뚱멀뚱 바라보다가 얼마 전 책을 읽다가 메모해 두었던 수첩을 뒤적여 보았습니다.

“좋은 남편이 되기 위한 방법” 이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습니다. 나는 지나간 달력 한 장을 북 찢어 뒷면에 크레파스로 큼직하게 적었습니다.

1. 아내의 인격을 존중하라

2. 아내의 자존심이 상하는 말은 절대 하지 마라

3. 아내에게 믿음이 가는 행동을 보이라

4. 기념일에 작은 것으로라도 기뻐하게 하라

5. 다른 사람 앞에서 아내를 무시하지 마라

6. 아내의 생일을 기억하라

7. 처가에 우선해서 배려하라

8. 아내의 관심사에 귀를 기울이라

그러고는 남편 눈에 가장 잘 보이는 컴퓨터 모니터에 붙였습니다. 당구장 표시도 몇 개 하고, 테두리도 선명하게 칠해놓았습니다. 차마 내 입으로 말하기는 그렇지만 남편의 마음에 꼭 새기고 싶은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한참 후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혼기라면 혹 몰라도 결혼한 지 몇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친정과 시댁을 구분해서 남편의 대수롭지 않은 말에 내가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했나?…….’ 그러나 배려 없는 친정 이야기는 모든 아내들에게 상처가 되는 말입니다. 가능하면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 주세요.

시종중앙교회 황경연 사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