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7시간 기도, 2시간 찬양연습, 그리고 거리 전도……. 경북 봉화군의 하성 방주교회 신실라 목사의 하루 일과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덥거나 춥거나 전국 방방곡곡 어디든 찾아나서는 그는 전도를 하면서 목회자로서의 정체성을 느끼며 감사로 충만해진다고 한다. 물론 아로니아 농사를 짓는 여름 한철은 일정이 동일하지는 않다. 아로니아는 신 목사 일행이 거리찬양 사역을 감당하는 데 보석과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1년 농사로 얻은 수익은 사역의 경비를 충당하고 미자립교회와 해외선교사들까지 돕고 있다.
▲ 하성에벤에셀찬양선교단(지난 8월 하성방주교회에서 열린 사도회 회원들의 기도모임에서)
경북 봉화군 산골에서 찾아오는 사람을 기다리기만 한다면 한 영혼도 구원하기 어렵다는 게 신 목사의 말이다. 그래서 거리로 장터로 역전으로 찾아 나섰고, 신 목사와 하성에벤에셀 찬양선교단은 그 기쁨을 한껏 누리고 있다. 그 어렵다는 시골 목회 5년차인 그는 “시골목회도 하나님이 하시면 어렵지 않다”고 말한다.
다리에 힘이 있는 그날까지 ‘기도하고 전도하고 찬양하면서 살겠다’는 신실라 목사. 그는 산골 깊숙한 곳에서 농촌목회를 하고 있지만 하나님 나라를 향한 크고 원대한 비전은 그 누구에 비할 바가 아니다.
▲ 3월 경 나라와 민족을 위해 홍천 높은터 산속에서 40일 작정 금식을 겸한 산기도
원주에서 봉화로...섬김 목회에서 거리찬양사역자로
신실라 목사가 경북 봉화군 봉성면 다덕로 954-3 깊은 산골로 들어온 것은 5년쯤 전의 일이다. 원주 시내에서 10여 년간 목회를 했던 신실라 목사는 자신이 보살피고 있던 장애인들이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문제를 일으키면서 주민들의 원성을 듣게 되고 급기야 도시 목회를 접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152평 3층 교회 건물은 원주에 사는 황인숙 권사(당시 72세)라는 분이 기증했다. 본래 여관으로 사용되던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3층은 교회와 사택으로 사용했고, 1,2층은 원룸으로 개조하여 임대를 했다. 그런데 3층에서 매일 찬양으로 예배드리자 세입자들이 시끄럽다고 모두 떠나버린 것이다. 빈 원룸에 하나님은 정신 지체장애자와 무의탁노인, 노숙인들을 섬기게 했다.
정신지체장애자 1급은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기 때문에 돌보기가 오히려 수월했다. 문제는 정신장애 3급부터. 원주 시내를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그들은 상점에서 물건을 훔치기도 하고, 술집 같은 데서 여성 속옷을 갖고 오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A라는 고물상에서 물건을 훔쳐서 B라는 고물상에 파는 일도 많았고 그 과정에서 주인한테 들켜, 교회로 끌려오기도 했는데 영창 보낸다고 한바탕 난리가 벌어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신 목사는 상대방이 손해 본 것을 다 지불하고 “영창 보내면 뭐합니까? 정신지체장애자들인데……. 넓은 아량을 베풀어주세요. 더 조심시키겠습니다.” 면서 사정사정을 했다. 그러나 그들을 붙잡아 놓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이런 일이 반복되다보니 날이 갈수록 주민들의 원성이 높아졌다.
‘오늘은 무엇 무엇이 없어졌다’ 면서 수시로 전화가 걸려오고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려면 주변 사람들한테 피해주지 않는 깊은 산속 같은 장소에서 해야 되지 않겠냐는 의견들도 쏟아놓곤 했다.
그 무렵 국민일보에 경북 봉화군 봉성면 다덕로 954-3의 매매광고가 게재된 것을 보게 되었고, 신 목사가 시무하고 있는 교회 건물과 서로 맞바꾸게 된 것이다. 보살피고 있던 장애인들 20명과 함께 봉화군 산골로 들어왔다. 처음에는 장로, 권사 등 중직들과 교인들도 몇 사람 있다고 들었는데, 막상 와보니 사람 한 명 없었고, 수리하는데 만 1년은 족히 걸렸다. 시골 교회에서 자비로 장애인들을 섬기는 데 3년이 지나니 더 이상 감당이 불가능해졌다. 기관을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해도 허가난 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도와줄 수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나는 복음 전하는 사명자”
신실라 목사는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해 봉화군에서 귀농자금 지원을 받아 사과밭 2천5백평에 사과나무 750주를 사서 농사를 시작했다. 교회 땅에 아로니아도 심었다. 어떤 날은 밤 9시가 넘도록 일을 했는데, 그때 문득 든 생각이 “목사가 아니라 농사꾼이 된 것 같았다.” 하나님께 부름 받은 사명자가 다른 일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던 그는 사과밭을 과감히 처분했고, 감당이 되지 않는 장애인들은 전문시설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많아지자 기도에 매진하게 된 그는 기도 중 “이제는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실라 목사가 목회를 시작한지는 15년 정도 됐다. 1995년에는 바디메오 맹인선교단 5명과 함께 섬기는 자로 그들의 눈이 되어 미국 한인교회 40교회를 순회하며 찬양집회를 한 바 있는 그는, 이 사역을 마치고 귀국 후 IMF로 인하여 잘나가던 건축업이 부도를 맞고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심지어 부모님의 집까지 경매당하고, 그가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자료들도 이 때 많이 잃게 되었다고 한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비전을 기록하고 3000명 목회자들한테 받은 사인 북의 내용도 이때 없어지고, 겉표지만 남게 되었다.(좌측 사진이 겉 표지)
극심한 어려움 속에서도 외할머니의 신앙을 계승한 어머니의 믿음이 신 목사를 지켰다. 모든 것을 극복하고 주의 종으로서의 사명을 확인한 그는 대전침례신학대학교에 입학하여 공부를 하고 목사가 되었다. 졸업 후에는 중동에서 선교사로 사명을 감당한 후, 원주에서 목회를 시작하고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신실라 목사가 거리찬양을 한 것은 목사가 되기 전부터다. 햇수로 따지면 30여 년을 헤아릴 것이다. 현재는 곽윤희 사모와 곽 사모의 동생 곽윤옥 찬양전도사가 하성에벤에셀 찬양선교단을 꾸려 거리전도에 함께하고 있다.
교회가 소재한 봉화지역 주변의 풍기장 영주장 춘양장 봉화장을 비롯하여 전국의 행사장 어디든 가서 찬양하고 경배하며 복음을 전하고 있다. 여름에는 무농약 아로니아 농사를 짓고 있다.
▲ 사도회를 발족시킨 고중권 목사(좌)와 신실라 목사 등이 아로니아 열매를 따고 있다.
신실라 목사와 하성에벤에셀찬양선교단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거리 찬양 전도를 하는데 일등 공신역할을 하고 있는 아로니아는 밭골마다 부직포를 깔아 풀이 나지 못하게 했고, 무농약으로 재배되어 봉화군에서 유기농 농장으로 인증을 받았다. 일 년에 농사짓는 총 노동시간은 30일 정도로 아주 짧아 목회에 큰 지장이 없다. 더욱이 수확 때 7일 정도만 빼고는 일 년 내내 전국행사장을 돌며 찬양과 노방전도를 하고 있다.
신 목사가 5년 전 심은 1200주에서 매 해 4~5톤 이상의 수확을 올리고 있으며, 올해는 특히 이 지역에 우박이 많이 내려 농작물들이 초토화되다시피 했는데 하성 방주교회의 아로니아 밭은 하나도 망가지지 않아 주변사람들이 모두 놀라워하고 있다. 자동차 유리를 깨뜨릴 정도로 그 위력이 대단했던 골프공만한 크기의 우박이 엄청나게 쏟아지자 사과나무, 배, 고추 등 농작물들을 싹 쓸어갔다고 한다.
▲ 하성방주교회를 방문한 사도회 회원들과 함께-사도회는 파키스탄선교를 돕고 확장하기 위해 고중권 목사가 발족시킨 모임이다.
“목사님들이 오실 때마다 기도해주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사역을 기뻐 받으시기 때문에 보호해주신 것”이라고 신실라 목사는 말한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늘 피부로 느끼고 있는 그는 이곳 봉화군 산골에 들어와서도 많은 체험을 했다고 한다.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때는 수돗물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군수님이 직접 이 높은 데까지 오셔서 30년 만에 처음으로 상수도를 뚫어주어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농장의 잔디도 군에서 실어다 줘서 비용들이지 않고 깔 수 있었어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면 늘 놀랍고 감사할 뿐입니다.”
▲ 한여울전원교회 경로잔치 때 찬양하는 하성에벤에셀찬양선교단
하나님이 꿈꾸게 하신 원대한 비전
하성방주교회의 비전은 신실라 목사가 목회하기 전부터 발아되었다. 그가 사업가였던 30년 전에 금식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한 것이 있다. “20만평 부지 위에 3만평 성전 건축을 하겠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 기도는 지금까지 계속되면서 비전은 더 커졌다.
그것을 기록해 놓고 3000명 목회자들의 사인을 받은 책은(위에서 두 번째 사진) 부도로 내용물을 모두 잃고 지금은 표지만 남은 상태다. 신실라 목사가 현재 기도하고 있는 것은 300개 교회 건축과 50만평 부지위에 실버타운, 즉 목회자들을 위한 집을 세우는 것이다. 이곳에 선교센터와 암환자전문 쉼터, 예수사관학교, 수목장, 그리고 농지 20만평을 마련해서 자급자족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은퇴목사님들이 함께 모여 마지막까지 복음전파의 사명을 감당하실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다면 바이블렌드를 만드는 것도 제 꿈입니다.” 바이블렌드는 창세기부터 중요한 사건들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는 특히 ‘세계열방에서 한국으로 선교여행을 오게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또 모든 어린아이들이 하나님을 알게 하여 우상으로부터 지켜내고, 어린영혼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돌아오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기도는 기적을 불러온다’는 신 목사는 자신이 세운 계획이라기보다는 주님께서 성령을 통해 꿈꾸게 하시고 기도시키시며 이 일을 향해 몰고 가신다고 말한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 가능성은 제로지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면 이루어진다는 것이 신 목사와 하성방주교회 성도들의 믿음이다.
“어느 사업가가 저희 교회에 300억 작정헌금을 했습니다. 300억을 사인해서 봉투에 넣어 전해주셨는데,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저희는 늘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신 목사는 ‘사심 없이 주님의 일을 하면 주님이 우리 일을 해 주신다’고 말한다. ‘이곳에 오게 된 것도 하나님께서 기도시키기 위함’이라면서, ‘하루에 7시간 이상 기도한다’면서, 기도하지 않으면 힘을 낼 수 없다고 한다.
그는 특히 “영혼이 잘되려면 전도해야 된다.”고 강조한다. “목사는 전도하지 않으면 영혼이 살수가 없다”고 말하는 신실라 목사는 기도하고 전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을 새롭게 하신다고 장담했다.
“어떤 날은 스님이 목탁을 들고 절 때리려고 쫓아옵니다. 부처는 신이 아니라고 얘기하기 때문입니다. 맞지 않으려고 목탁을 빼앗아 버리기도 했는데, 우리는 죽기까지 바울과 같이 전도하다가 하늘나라 가야합니다. 목사가 전도하지 않으면 절대로 천국갈 수 없어요. 믿음으로 천국가지만 중간에 실족하는 자가 많습니다. 우리는 특별히 군사인데 군사가 자기 일을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되잖아요. 천국 간다하더라도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부끄럽지 않아야합니다. 내 다리에 힘 있는 그날까지 기도하고 전도하고 찬양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신실라 목사는 믿음이 식어가는 시대에 하성 방주교회를 통해 다시 한 번 대한민국과 전 세계로 복음이 전파되기를 소망하며 오늘도 기도하고 찬양하며, 거리로 역전으로 시장으로 한 영혼을 찾아 나서고 있다.